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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마시멜로의 연결고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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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일-아니면 5일-은 입춘, 즉 봄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렇게 추운데 무슨 봄이람. 집 밖보다 안을 좋아하는 회사원 하이바 아리사는 꽃샘추위인지 그냥 추위인지 모를 것을 느끼며 속으로 24절기를 중국 화북 지방에 맞춰 정한 옛날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앞머리를 남기고 위로 묶은 백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선망, 혹은 질투의 시선은 아리사에게는 신경 쓸 것이 되지 못했다. 바쁘디 바쁜 직장 생활 중 오랜만에 친구들과 회포를 풀기로 한 날,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꾸미고 나왔는데. 봄에 어울리는 남색 플리츠 미디 스커트,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가디건, 초록색 스카프, 흰 양말과 갈색 유팁 구두의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거 풀면 춥겠지.“

 

   전철역까지 한참 남은 지금, 스카프로부터 느껴지는 감각과 찬 공기로부터 느껴지는 감각 사이에서 아리사는 꽤 갈등했다. 그러다 겨우, 아주 잠시만 전자에서 벗어나자는 선택을 했지만, 스카프의 매듭을 푼 순간 바람이 불어왔고 하늘하늘한 스카프는 순식간에 손에서 벗어났다. 놀람과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줄 모르던 찰나, 누군가 달려와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받으세요!"

 

   해맑게 미소 지으며 스카프를 건네는 남자를 보고, 아리사는 생각했다. 이게 바로 봄이 오는 모습이라고-

 

 

   히나타 쇼요. 전철역 근처에 사는 체육교육과 학생이라고 했다. 신입생인 줄 알았는데 4학년이랬다. 세상에. 아리사는 2m 가까이 되는, 히나타와 딱 동갑인 남동생을 떠올렸다. 히나타는 180cm 가까이 되는 자신보다 작은 것이 아무리 크게 잡아도 170cm 초반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자신과 남동생이 평균 초과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체육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름부터가….”

 

   日向翔陽. 이름에 태양이 두 개나 들어간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우락부락한 남자들보다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언덕을 가볍게 뛰어다니는 요정과 같은 인상이었다. 중학생 때까지 주변의 남자들은 어린 애들로밖에 안 보였고, 여자고등학교와 여자대학교를 나왔다. 한때 잘생긴 남자 선생님에게 꺅꺅거리던 때도 있었지만 남자 아이돌 보고 꺅꺅거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좋아.”

 

   하이바 아리사, 올해 26세,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모양입니다. 단순히 스카프 하나 잡아 준 사람의 대략적인 신상과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 남자 아이돌 프로필 알아내는 것과 똑같을 리 없었다. 전화번호를 묻고 교환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너 오늘 좀 멍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침대 커버가 형편없이 밀려 구겨졌다.

   아리사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아리사와 짝을 하려는 애들이 줄을 섰고,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때는 뭘 넣을 수 있는 공간에 사탕이나 러브레터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고등학교 때 버스를 타면 남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으며, 대학교에서는 타 대학교와의 교류 행사 등에서 작업 걸려는 남자들이 넘쳤다. 지금 직장에서도 밥 같이 먹지 않겠냐는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남자들 중 아리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했던 사람은 없었다. 눈치 없다는 소리는 조금, 아니, 많이 들어도 좋고 싫음은 확실히 알았다. 그가 정말 좋다. 오늘 아침에, 전철역에서 조금 먼 곳에서 만난 히나타 쇼요가 정말 좋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나, 쇼요하고 만난 적 있어?”

 

   미끌, 수요일 출근 전 아침 식사 중 아리사는 남동생 리에프의 돌발 행동에 젓가락으로 집었던 니쿠자가의 감자를 놓쳤다. 지금 리에프가 말하는 쇼요가 어떤 쇼요일까. 아는 것을 모르는 듯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 히나타 쇼요. 리에프는 아리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너희 누나 진짜 아름다우셨다고 그러던데?”

   아, 이름도 알려줬지. 하이바는 러시아인인 아버지의 성씨를 음차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흔할 리 없는 성씨였다. 방학이라 시간이 남아돌아 친구들을 자주 보러 나갔던 리에프가 어제 본 친구가 히나타였던 모양이었다. 진짜 아름답다, 태어나서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었지만 히나타의 입에서 나왔던 것을 들으니 가슴이 더 거세게 뛰었다. 겨우 원래 젓가락질을 되찾고 놓친 감자를 집었다.

 

   “딱 한 번 만났어. 둘이 무슨 사이야?”
   “동아리 친구.”

 

   사실 전철역 근처에서 다닐 만한 대학교는 리에프가 다니는 대학교밖에 없었지만, 리에프는 체육과였기 때문에 아리사는 리에프와 히나타가 동갑인 것을 넘어 아는 사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리에프는 고등학생 때 배구부였고, 대학교에 입학한 지금까지도 계속 해 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리사는 배구 포지션별 특징 정도는 간단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다. 180cm는 절대 안 넘을 테니, 리베로려나.

 

   “포지션 뭐야?”
   “미들 블로커!”

 

   툭, 이번에 놓친 것은 고기였다. 아리사는 머릿속으로 히나타가 블로킹을 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지만 그 작은 몸으로 막을 수 있는 범위는 결코 넓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리에프도 그 큰 키를 가지고 처음부터 잘 막았던 것은 아니지만-아리사는 부둥부둥 했어도- 히나타는 일단 키부터 작았다. 명백하게 작았다. 어떻게 미들 블로커를 한다는 것일까. 말을 꺼내기 직전 리에프가 말을 이어서 했다.

 

   “그런데 누나, 전철 시간 안 됐어?”
   “응?”

 

   식탁에 놓인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맙소사. 회사 앞 역에 가는 전철이 와 있을 시간이었다. 아리사는 젓가락을 곧바로 내려놓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 뒤 뛰어나갔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방학이 있는 리에프가 부러웠던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부러웠던 적은 없었다. 힐 소리가 끊기지 않고 맨션 복도를 울렸다.

 

   다행스럽게도 택시를 바로 잡아 지각은 면한 아리사는 점심시간이 되자 회사 앞 식당으로 나갔다. 오늘은 입사 후 처음으로 혼자 밥 먹기를 할 생각이었다. 식당에 막 들어섰을 때는 평소 동료 한두 명을 앞이나 옆에 두고 먹어서 그런지 긴장감마저 느꼈지만 자리에 앉고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차츰 차분해졌다. 인사이더의 단점일까. 톡톡,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분주했다.

 

                                               [레보치카]

                                               [히나타 이야기 더 해 줘] -나

 

   문자 상대는 집에서 TV로 배구 경기 등을 보고 있을 리에프였다. 리에프, 혹은 레프라는 이름의 일반적인 애칭인 료바보다는 레보치카가 귀여워서 평소에도 그렇게 불렀고 휴대전화에도 그렇게 저장해 놓았다. 리에프는 다른 누나들이 말하는 남동생과 달리 굉장히 말을 잘 듣는 남동생이었기 때문에 아리사의 문자에 성실히 답장을 줄 것이었다. 띠링- 메뉴판을 집어 들고 펼치는 사이 과연 답장이 왔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슨 이야기?] -레보치카

                                               [배구할 때 어떻다든가] -나

   [팀에서 가장 점프를 잘 하고]

   [리시브가 굉장해]

   [눈 감고 스파이크 친다?] -레보치카

 

   가장 점프를 잘 하고, 리시브가 굉장하고, 눈 감고 스파이크를 친다. 아리사는 세 가지 모습을 순서대로 그려 보았다. 첫 번째 모습에 미들 블로커라는 포지션이 납득되는 것 같기도 했다. 중간에 주문 안 하시냐는 말이 들려 쇼유 라멘 주시라고 했다. 평소 정신을 자주 파는 것 같다는 소리를 친구들에게 몇 번 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말을 들을 만했다고 아리사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는 말 말고]

                                               [한 말은 더 없었어?] -나

   [문자 드리고 싶은데]

   [뭐라고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레보치카

 

   이럴 수가, 어디까지 나를 두근거리게 할 작정인 거지. 아리사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 리에프 등 친족들을 제외한 지금까지 만나 온 남자들은 삭제된 지 오래였다. 만화에서 나오는 첫사랑 생각을 하는 여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걸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거지. 같은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친구가 할 법한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물론 쇼유 라멘 나왔다는 말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시간 있으시냐고 문자하라 그래] -나

   [알았어] -레보치카

 

   시간 있으시냐는 문자는 아리사의 짜증을 유발하던 문자였다. 그 문자를 보낸 번호는 아리사에게 전부 즉시 차단당하고 잊혀졌기 때문에 리에프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대화가 끝나자 아리사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라멘을 한 젓가락 집었다. 이 식당이 라멘을 잘 해서인지,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먹어서인지 짜다는 느낌 없이 술술 넘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하이바상!”

   “안녕하세요, 히나타군.”

 

   다음 날 점심시간에 히나타는 아리사가 다니는 회사 근처의 작은 카페로 찾아왔다. 점심을 같이 먹는 것보다는 점심 먹고 입가심을 위한 음료를 같이 마시는 것이 이야기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한 장소였다. 처음에 히나타는 주말을 생각했지만 아리사가 점심 시간에 만날 수 있다고 하자 마침 목요일에 듣는 강의가 없다고, 괜찮냐고 했다. 아리사는 무조건, 괜찮았다.

 

   회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아리사와 달리, 히나타는 여자를 거의 만나 본 적 없는 티가 나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아리사에게는 사랑스럽게 보여 콩깍지의 존재를 더 부각시켰다. 저 연두색 후드는 분명 스몰 사이즈겠지. 청바지는 운동하다 찢어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 찢어져 있는 것일까. 운동화는 꽤 낡은 것 같은데 저 브랜드 새 제품 사 주자.

 

   “레보치카 친구면 아리사상-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아리사상도 반말 써 주세요!”

 

   처음 만나서 들었을 때도 앳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앳되네. 낮지 않은 편인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아리사는 웃음을 지었고 그러겠다고 말했다. 수다스러운 두 사람이 만나니 이야기는 끊이지가 않았다. 첫 만남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의 고충, 사적인 취향까지, 누가 들으면 오랜만에 만난 절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둘의 대화 코드는 놀라울 정도로 안 맞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 응원하러 갈게요.”
   “감사합니다!”

 

   대학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리에프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자주 리에프의 경기를 보러 갔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니 주말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피곤해서 나가기가 힘들었다. 리에프도 그것을 알아서 준결승전이나 결승전 같은 큰 경기가 아니면 아리사를 부르지 않았다. 말하고 나니 조금 리에프한테 미안해지는데. 나중에 유부초밥 세트라도 사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리사는 음료를 쪽 빨아들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길, 아리사는 쏟아지는 잠에 느릿하게 걸어 가다 낯설지 않은 인영에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왜 히나타군이 저기 있는 거지. 오늘 히나타가 늦게까지 듣는 강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만으로도 아리사의 신경이 쓰이기는 충분했다. 아리사는 히나타에게 다가갔다. 꽤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인지 결코 따뜻하다고 할 수 없는 날씨에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히나타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배, 밸런타인 데이 선물 드리려고요!”

   말투를 보니 날씨 하나 때문에 얼굴색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히나타가 내민 것은 투명한 뚜껑과 분홍색 리본으로 포장된, 작은 초콜릿들이 담겨 있는 하얀 케이스였다. 일정하지 않은 모양과 비뚤비뚤한 아이싱 등이 히나타가 직접 만든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밸런타인 데이 선물. 요즘 여러 이유로 업무량이 폭등해 날짜를 확인하는 것을 잊고 지냈는데 남자에게, 히나타에게 받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이걸 주는 건….”

   “더, 더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주는 거 아닌가요!”

 

   와, 더 좋아한대. 아리사는 자신을 박력으로 한 번 죽이고 귀여움으로 한 번 더 죽일 이 귀여운 자신의 짝사랑 상대를, 아니, 이제 자신과 서로 사랑하게 될 상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굳이 발개지는 뺨까지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내가 더 좋아할 거라고 말하면 히나타군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데 똑같이 초콜릿을 주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까.

 

   “이를 어쩌지, 오늘 무슨 날인지 잊고 있었거든.”

   “괜찮아요!”

 

   업무량, 망할 업무량. 리에프와 어쩌다 싸울 때도 나쁜 말 해 본 적 없는 아리사였지만 이번에는 진짜 망할, 소리가 절로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본명초코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뺏어가다니. 망할 업무량. 진짜 망할 업무량. 정말 괜찮다는 뜻으로 웃는 히나타의 얼굴이 아리사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타.

 

   “다음 화이트 데이 때는 더 좋은 거 드릴게요!”

 

 

   그 사건으로, 아리사는 3월의 어느 주말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밸런타인 데이에 히나타군이 줬으니 화이트 데이에는 자신이 주겠다고 부려 본 적 없는 고집을 부렸다. 그 날 자신의 자리에 쌓일 것이 분명한 가게에서 흔히 파는 사탕 따위를 히나타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직접 만들어서 줄까. 하지만 직접 만드는 것도 요즘에는 흔해졌다.

 

   “레보치카, 너는 화이트 데이에 뭐 줄 거야?”
   “어? 나는 사탕 나눠 주려고.”

 

   리에프는 좋은 남동생이지만 이런 쪽으로 도움이 되는 남동생이 아니었다. 아리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물어본 것이었다. 아리사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아리사처럼 화이트 데이를 벌써부터 챙기려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었다. 흔해졌다 해도 수제가 최고인가. 그러나 전부 아리사가 한 번쯤 들어봤던 것들이라서 성에 차지 않았다. 외국 사이트를 한 번 찾아볼까. 그 때 딱 눈에 들어 온 것이 있었다.

 

   “제피르?”

 

   찾아 보니 마시멜로와 비슷한 음식 같았다. 만족스러움에 재료와 레시피를 번역기의 힘과 좋다는 소리 몇 번 들었던 어학 실력을 살려 가며 천천히 검색했다. 조금 난이도가 있어 보였지만 히나타를 위해서라면 아리사는 몇 번을 실패해도 시도할 수 있었다. 당분간 퇴근 후의 꿀 같은 잠은 뒤로 미뤄 두자. 꿀 같은 사랑을 위해서. 집에 없는 재료를 사러 나가야 했다.

 

   그렇게 화이트 데이 당일, 아리사는 히나타에게 퇴근할 때 연락할 테니 나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히나타는 당연히 나오겠다고 했고, 아리사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제피르를 남자 동료들의 시선으로부터 숨기는데 애썼다. 동료들의 물음을 넘길 때는 평소처럼 필터 없던 혹은 적던 입을 몇 번 때려 줘야 했다. 남자 동료들은 그렇다 쳐도 여자 동료들은 왜. 퇴근 시간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다려졌던 적은 없었다.

 

   “아리사상!”

   “히나타군.”

 

   이제 3월, 진짜 봄 날씨에 접어 들었는데도 히나타의 얼굴은 밸런타인 데이 때처럼 빨갰다. 그 얼굴에서 설렘이 느껴져서 아리사는 아직 히나타의 반응을 보지 못했음에도 웃음이 나왔다. 국내에서 진짜 찾기 힘든 음식이니까, 분명 놀라겠지. 리에프와 아버지를 통해 맛도 테스트했다. 포장지도 안목 좋고 디자이너인 친구에게 골라 달라고 한 것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동료들이 꽤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 화이트 데이 선물."

 

   히나타는 아리사의 선물을 받아 들었다. 지금 바로 풀고 먹어 보라는 말에 포장지가 최대한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뜯는 모습이 체육하는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윽고 아리사가 잠과 사랑을 맞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제피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콜릿으로 코팅이 되어 있었는데 질감은 젤리와 같았고 먹어 보니 달달한 사과 퓌레의 맛이 났다. 히나타는 아리사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오늘부터 1일 하자, 히나타군.”

 

   부드럽게 웃는 아리사의 얼굴에 히나타는 사과처럼 완전히 얼굴이 익어 버렸고, 이내 푹 고개를 숙인 뒤 작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을 아리사는 놓치지 않았다. 제피르보다 훨씬 달달하고 부드러운 것이 맞닿기 직전이었다.

 

 

Zephyr: 산들바람

Зефи́р(Zefir, 또는 Zephyr): 러시아식 마시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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