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인이 우울해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했다. 좋은 말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평소보다도 더 잘해주면 된다.
나름 잘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모양이었다. 우카이는 이 이상 더 어떻게 잘해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첫 연애는 이래저래 힘들다.
우카이의 현 상황에서 연애자체는 확실히 사치이긴 했다. 산만큼 쌓인 빚과 갚는 것에 비해 몸을 불려나가는 이자 때문에 이따금 숨이 멈출 지경이었다. 빚 갚는 것에 집중을 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평생 히나타 같은 사람은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답지 않게 욕심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우카이는 손님을 떠나보낸 조용한 치과에서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따로 청소업체를 쓰려하는 것을 말리고 청소를 도맡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바닥을 쓸고 닦으니 벌써 밤 10시. 오늘 치과를 방문한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바닥이 끈적거려 청소가 평소보다 더 길어지고 말았다. 히나타와 저녁을 먹기로 했었지만 결국 약속은 포기하고 말았다. 종종, 히나타는 자신보다도 더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빚을 갚느라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우카이는 죄 없는 대걸레는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몇 번 내려치다가 치과 문을 잠그고 차에 올라탔다.
핸드폰을 라디오 옆에 고정시키고 자동차에 차 키를 꽂으니 마침 히나타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왔다.
[퇴근했어요?]
답장을 보내려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케이신! 퇴근했어요? 퇴근 중?’]
“응, 오늘은 미안. 내가 먼저 먹자고 했는데...”
[‘됐어요, 다음에 먹으면 되지! 그럼 혹시 지금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아, 응. 못 먹었네.”
청소가 바빠서 배고픈 것도 잊었다. 히나타가 말을 꺼내니 뒤늦게 위장에서 배고픈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집 근처 편의점이라도 들릴 생각이었는데 히나타가 속마음이라도 들었는지 말을 이었다.
[‘스프랑 마파두부 좀 남았는데 드실래요? 데워서 가져갈게요!’]
“오, 땡큐.”
[‘집 앞에서 기다릴게요.’]
“아냐, 내가 그 쪽으로 갈테니까...”
[‘그래봤자 10분 거리잖아요. 제가 그쪽으로 가는 게 더 편해요.’]
“그럼 들어가 있을래?”
[‘저 사실 고백할게 있어요....’]
“벌써 들어갔구나?”
[‘저 보고 있어요? 헤헤, 식기 전에 빨리 오세요~!’]
히나타가 수화기 너머로 쪽 소리를 낸다. 전화가 끊기질 않는다. 우카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히나타와 마찬가지로 쪽 소리를 내주었더니 그제야 전화가 끊겼다.
애인의 애정표현이 상당하다. 아니, 히나타라면 더 나이를 먹는 다 해도 많이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차 안의 공기가 퀴퀴해서 창문을 열었더니, 거름냄새가 지독하다. 도쿄에 있는 치대에 합격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거름냄새 나는 고향으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 결심을 했다. 꼭 성공을 해서 도쿄 한 가운데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하며 4평짜리 외풍이 들어오는 월세방에서 결심을 했더랬다. 그리하여 졸업과 함께 동기들, 그리고 학교 선배와 함께 돈을 긁어모았다. 그래도 한참은 부족해서 은행에 대출까지 받아 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치과를 하나 차렸다.
실패의 원인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지만 하여튼 환자를 끌어 모으는데 실패했고, 마지막 1년은 이를 악물며 우카이 혼자 버텨보았지만 시원하게 말아먹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수순이었기에 충격도 없었다. 월세마저 감당하기 힘들어 마지막 4달 동안은 치과 소파에서 쪼그려 누워 생활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마음 한 구석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같이 개원한 동기들이 떠나갈 때 이미 저도 모르게 마음을 정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카이는 빚 독촉 편지 5장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날 적부터 맡던 거름냄새는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향에 돌아오니 따로 집을 구할 수마저 없어서 어머니의 집에 지내며 입에 술만 달고 살았다. 어차피 갚으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며칠 정도는 술로 보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빚쟁이 주제에 술만 마시며 식충이가 된 하나 뿐인 아들이 마음에 안든 우카이의 어머니는 지인을 통하여 동네 근처 치과에 우카이를 소개시켜 주었고, 친척을 통하여 파격적인 가격의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똑같은 4평짜리 방과 치과의 드릴 소리를 듣자 트라우마가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총 6장이 된 독촉 편지 덕에 트라우마 정도야 강제로 극복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니 나름 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은행에 가득 쌓인 빚을 보면 살기 싫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금요일까지 매일 치과 출근과 청소를 도맡아 하고 토, 일요일은 이웃들에게 일당을 받으며 밭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런 생활이 두 달 쯤 되자 확실히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우카이는 히나타 쇼요와 만나게 되었다. 23살의 히나타 쇼요, 옆옆 집의 맞은편에 사는 배추농사 집 히나타 가의 장남이었다.
한 번쯤 마주칠 법도 한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유독 앳된 얼굴이 인상적이다. 23살로 도저히 보이지 않은 맑은 목소리에, 농가의 아들답지 않은 핑크빛으로 붉어진 얼굴이 눈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다.
“저희 집 도와주시기로 하신 분이시죠?”
배추를 나르던 히나타가 목장갑을 벗고 손을 뻗었다. 우카이는 그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저기 사카노시타 상점의 우카이 케이신이라고 해요.”
“말 편하게 하세요! 저 23살이에요! 형은 29살이라고 들었는데. 아, 전 히나타 쇼요라고 해요. 저희 엄청 가까이에 사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못 마주쳤네요?”
“응, 그러게.”
히나타는 목소리처럼 성격까지도 발랄했다. 나 23살엔 어땠더라. 우카이는 과거를 곱씹었다. 담배를 너무 펴서 목소리가 걸걸해지고 면도가 귀찮아서 수염을 길렀다가 못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고급 면도기를 사서 깨끗한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관리하던 때였다. 볼 살이 아직 꺼지지도 않은 히나타와 비교된다.
“아, 아저씨 허리는 괜찮으셔?”
오늘 히나타 가를 돕게 된 이유였다. 히나타의 아버지가 배추가 든 박스를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간병인으로 어머니까지 병원에서 나올 수가 없어 농사일은 오롯이 히나타의 몫이 되어버렸다. 농가의 아들치고는 밭일을 제대로 해 본적 없는 히나타에게 혼자서 맡기기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일도 많아 우카이를 부르게 된 것이었다.
“며칠은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데요. 박스는 카트에 올리고 끌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그냥 막 옮기더니 결국 삐끗할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면 퇴원하셔도 계속 쉬셔야 되겠네.”
“그러니까요. 그래도 오늘 것만 끝내면 당분간 밭에 손댈 일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우리 빨리 끝내요.”
히나타는 배추를 담을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뒤로 넘겼다. 썻던 모자를 벗고 부채질을 했더니 짧은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다.
어이없게도 우카이가 히나타를 마음에 두게 된 날이었다. 쉬지도 않고 조잘거리는 소리는 보다 피곤하지 않고 재밌었다. 별 것 아닌 우카이의 이야기에도 크게 반응해주며 주위 깊게 들어주는 히나타는 퍽 호감상이였다.
히나타는 배구가 너무 좋아 실업팀에 있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모교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고 하였다. 우카이도 잠깐 동안이지만 배구를 한 적이 있어서 이젠 대화가 끊기지도 않았다. 우카이는 세터, 히나타는 미들블로커, 대화가 잘 통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배구 포지션마저 잘 어울린다.
말은 많았지만 그래도 몸 움직이는 것은 쉬지 않았다. 박스를 두 개씩 쌓아 계속 날랐다. 머리 꼭대기에 자리 잡은 태양에게서 쏟아지는 열이 무시무시할 정도라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이마에 맺힌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하더니 눈썹을 지나 눈 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우카이는 두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털어내려 했지만 피부에 달라붙어 있는 끈적이는 땀방울이 당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히나타가 그 모습을 보고 소매를 끌어당겨 땀을 닦아 주었다. 가까워진 숨결이 서로에게 오갔다.
히나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의류 무역회사 실업팀에서 4년 정도 활동했지만 팀에 잘 녹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타지생활에, 더불어 팀 사람들과도 잘 맞지 않아 슬럼프로 고생을 하다가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나마 모교에서 코치를 하지만 종종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는지 턱을 괴고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았다.
우카이가 히나타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히나타가 얼마나 배구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 경기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구도 많이 했는지 기술적 움직임에 대한 묘사까지 들어보니 꽤 전문적이었다. 그런 배구를 할 수 없어서 일까, 갈수록 히나타의 어두운 표정은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우카이 앞에서는 티를 내려하지 않고 있지만 멀리서 히나타를 지켜볼 때면 히나타는 눈을 내리깔고 웃음을 지우고선 입가를 쓸었다. 그 표정을 보기 싫어 일부러 모른 척, 지나갈 때도 있었다. 히나타는 결단코 저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든 잘 해주려 노력했지만 이따금 나오는, 이제는 우카이와 함께 있을 때도 나오는 그것은 막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인연이 닿은지 8개월이 되었을 때, 히나타 스스로 우울감을 해소하려는 듯이 부쩍 애정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히나타는 텐션이 높은 편이었지만 유독 키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우카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끝없는 애정표현을 하기에 바빴다. 아니, 그냥 키스만 주구장창 한다. 가볍게 스치듯 시작한 입맞춤은 진득한 프렌치 키스가 된지 오래였다. 아무리 적어도 20분 정도는 혀를 섞어가며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느라 바빴으니 턱은 빠질 것 같았고 혀는 뽑힐 것 같았다.
입술을 퉁퉁 부어서 평생 쓰지도 않은 립밤을 개봉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어머니가 안 쓰던 체리맛 립밤을 가져왔더니 입술 보호는커녕 그건 그거대로 좋다면서 입술을 더 오랫동안 핥느라 바쁜 히나타 덕에 입술엔 침 마를 날이 없었다. 추운 날씨와 함께 찾아온 차가운 초겨울 바람 덕에 입술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도 혀가 아릴 정도다.
우카이는 한 손으로 거칠어진 입술을 쓸다가 뻐근한 턱을 쥐고서 입을 크게 벌렸다. 턱에서 소리가 난다. 과한 것도 독이라고, 작작해야지 싶지만 유독 젊다고 느껴지는 애인을 생각하면 조금 무리를 해야 할 성 싶었다.
그래도 기분 좋은 통증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가벼운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 계속 집 안에서만 만났으니, 오는 주말에 외식을 하자고 하였다.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메뉴 선택권을 히나타에게 넘겼지만 히나타는 평소처럼 집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집에서 데이트 하는 거 질리지 않아?”
“추워서 나가기 싫은 걸. 요즘 입맛도 없고...”
“왜? 뭐라도 해줄까?”
“음.... 죽 같은 거?”
“죽? 어디 아퍼?”
우카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히나타는 딱히 아픈 곳은 없다고 말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이 죽이라고 하니 우카이는 찬찬히 히나타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이마에 손도 올려보았지만 적당히 따뜻한 열이 손끝에 감돌뿐이었다.
히나타는 우카이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아 내렸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죽이 먹고 싶어지는 거 있잖아요.”
“아니 딱히 없는데.”
“우씨, 난 그래요!”
“그래, 그래.”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거니 싶었다. 말 나온 김에, 매일 얻어먹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손님 대접을 하고 싶어 우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무슨 죽 먹고 싶어? 다 해줄게. 아, 저번에 탕두부 먹다가 남은 고기 있는데, 이거 넣어서 만들까? 소고기죽처럼.”
“아니... 고기는 됐고...”
“응? 고기 싫어? 그럼 뭐 넣지? 정말 쌀이랑 소금 밖에 없는데.”
“그거 딱 좋네요!”
히나타가 양 엄치를 치켜들었다. 바로 그거에요! 그리고 물을 많이 넣어요! 되도 않는 말을 하는 히나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분명 어딘가가 아픈 모양인데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지 통 말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미음을 먹겠다고? 배라도 아픈 거야? 심각해?”
“아뇨, 저는 절대로 그 어느 곳도 아프지 않아요.”
“.....”
히나타는 거짓말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번에는 기껏 쌓아놓은 배추 컨테이너를 모두 쓰러뜨리고선 웬 되도 않는 두더지가 나타나 밭에 쳐들어와 넘어뜨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괴상한 거짓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매번 이상한 거짓말도 속아 넘어가 주었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우카이는 히나타의 팔을 잡아 끌며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응급실까지는 거리가 있었으므로 그나마 괜찮아 보일 때 가는 것이 현명했다.
“병원가자.”
“전 정말 괜찮아요!”
“거짓말 다 보여. 아니, 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을 왜 이렇게 하려고 들어?! 배가 아픈 거지? 가자, 차에 미리 타고 있어.”
우카이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차키를 히나타에게 던져 주었다. 가볍게 캐치한 히나타는 곧바로 자동차 키를 우카이에게 패스하였다. 우카이 또한 가볍게 키를 받아냈다.
“그냥 갑자기 고소한 죽이 먹고 싶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저 어차피 배도 안 고팠는데, 밥은 됐고 우리 진하게 키스나 할까요?”
“뭐? 야, 잠깐!”
우카이는 입술을 쭉 내밀며 다가오는 히나타를 밀어냈지만 벌서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하기에 결국 히나타에게 질 수 밖에 없었다. 히나타를 품 안에 안고서 우카이는 히나타를 위해 허리를 조금 숙여 주었다. 히나타는 놓칠세라 까치발까지 하며 우카이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거침없이 입 안을 탐색하는 작고 따뜻한 혀를 받아들였다.
히나타가 우카이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은 예삿일이어서, 우카이는 따로 히나타용 베개를 사놓을 정도였다. 우카이 베개 옆에 자신의 주황색 베개를 바짝 붙여놓고서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불이 작아 히나타의 작은 몸이 자꾸만 빠져나가려 해서 탈이다. 우카이는 히나타의 어깨까지 이불을 다 덮어주었다. 히나타는 조금 뒤척이다가 다시 잠에 빠져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우카이는 베개를 가슴에 끌어안아 엎드린 채로 작은 스탠딩을 가져와 종이 뭉텅이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차근차근 갚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을 변제했다. 여름이 되면 소소하게 히나타 1시간 거리의 바다로 놀러가고 싶은데 과연 그 때에는 여유가 될까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작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월세를 줄이지 않았더라면 택도 없을 방이었다.
아닌 듯 욕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빚도 갚아야 하고, 애인도 있어야하고, 그 애인이랑 여행도 가야하고.
우카이는 서류 종이를 집어넣었다. 다시 잠든 줄 알았던 히나타가 꾸물거리며 우카이의 품으로 기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깬 거야?”
“케이신...”
“응?”
“나...”
잠에 잠긴 나른한 목소리가 우카이를 불렀다. 몸을 천천히 일으킨 히나타의 눈가에는 톡하면 쏟아낼 눈물이 가득 맺혀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역시 억지로라도 병원에 끌고 갔어야 했었다. 우카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걸어둔 자켓을 들었다.
“어디가 아픈 거였어?! 배? 위장? 장염 같은 거야? 지금 무슨 느낌이야? 토할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곳이 아픈 거야? 열은 안 나는데?”
우카이는 다시 히나타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다. 약간 따뜻하지만 열이 난다곤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히나타는 입을 우물거린다 싶더니 결국 아픈 것을 인정하고 입을 벌려 그 안을 가리켰다. 우카이가 눈동자를 굴리며 무슨 뜻인지 잡아내지 못하자 히나타는 좀 더 크게 벌렸다. 아주 크게 벌렸다.
이 와중에 키스를 해달라는 말인가 싶어 자동으로 입부터 나가려던 우카이는 무언가 발견하고 두 손으로 히나타의 얼굴와 턱을 잡았다. 아직 끄지 않은 바닥의 전등을 들어 히나타의 입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너 이 자식....”
“아파서 잠이 안와요...! 뺨도 아프고... 입 다물 때마다 아파요...!”
어금니에 자리 잡은 충치 하나가 또렷하게 보인다.
어릴 적부터 치과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기 싫었다고 한다. 주사는 괜찮아도 드릴은 최악. 어떻게 저 흉측한 소리를 내는 것을 입 안에 넣는 단 말인가. 죽기 직전까지 울며 치과를 가는 날이 많았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 버릇은 변치 않았다.
건강한 치아 건강을 위해 양치도 치실도 열심히 하지만 왜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충치에 취약한 히나타의 치아는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도 병원에 가야했다.
충치 때문에 이가 이상하다고 느낀 때는 한창 슬럼프로 고생을 할 때. 병원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가 미야기로 돌아 올 때. 미야기로 돌아오고 치과 문 앞까지 갔지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가 우카이와 사귀기 시작하고 한 달 째 되던 날.
“어쩐지 두부, 스프, 오챠즈케만 먹는다 했네, 이 멍청이!”
우카이가 이마를 짚고서 이 어린아이 같은 애인이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내지었다. 우카이의 사정으로 변변찮은 외식은 하질 못하니 먹는 것으로 눈치 챌 일은 없었다.
저번 주는 스프와 마파두부, 그제는 탕두부, 어제는 두부조림에 오챠즈케. 두부를 유독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그저 씹지 않아도 잘 넘어가는 메뉴니까 그것만 먹은 것이다, 이 바보 같은 애인은.
애정표현이라고만 생각했던 키스도 이것과 연관이 있었다. 키스를 하면 충치예방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주어들은 히나타는 마침 애인도 있겠다, 열심히 키스를 진득하게 해댄 것이다. 이미 있는 충치가 키스로 사라질 리 없지만 말이다. 옮기면 모를까. 우카이가 히나타를 말없이 쳐다보자 히나타는 손 하트를 내보였다. 치우라고 하였다.
하여튼 고통 앞에서 히나타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우카이가 일하는 치과에 도착하여 불을 키자마자 히나타는 그 무서워하던 치과에 들어와 누웠다. 달달 떠는 히나타의 손을 잡아주고 마취 주사를 넣어주니 그제서야 공포의 떨림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이야, 이거...”
“?!”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히나타와 눈이 마주쳤다. 상황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데 하면 난리가 날 것 같아 잠시 고민되었다.
“자세히 설명해줄까?”
“우우웅...”
“알겠어, 음.... 결론만 말할게. 내일도 와야 하고 금을 씌울게. 알겠지?”
“웅... 에이인.”
“혀 움직이지 마.”
“우이이아이어어아...”
“...그냥 혀 움직여.”
“키흐한 거 사아애서 그런 거에어.”
“그래, 알아.”
“저마? 진차러 사아애어.”
“오냐.”
“아이어브유.”
히나타는 다시 손 하트를 보낸다. 개구기를 끼고도 잘도 말한다. 왜 저 엉터리 같은 말이 해석이 되는지. 화난 것도 잠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 힘들었다. 잠시 드릴을 멈추고 어깨를 떨었다.
“? 개아나어? 나 안 시러애?”
“싫어한 적 없어, 충치 있는 녀석아.”
히나타의 동그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픈 것도 잊었는지 히나타는 반달 모양으로 눈을 접어 베시시 웃었다. 다시 드릴을 작동시키니 웃음이 언제 머물렀냐는 듯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쇼요, 그러면 계속 턱 괴고 있었던 것도 아파서 그런 거였어? 버릇인 줄 알았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아팠던 거야?”
“안 세바어어...”
“엄청 오래도 버텼네, 이 고집쟁이가.”
“...아아어.”
“이제 말하지 말고 아프면 손 들어.”
말 끝나기가 무섭게 히나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우카이가 히나타의 손을 내렸다. 그래, 아프구나. 애인의 고통에 공감을 해주었다. 히나타는 이번엔 두 팔 모두 들고 있으니 우카이는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초록색 공룡 인형을 가지고 와 품에 안겨 주었다.
“손 들라고 한 건 그냥 한 말이고 괘씸해서 그냥 내가 알아서 쑤실 거든? 알겠지? 인형 꼭 쥐고 있어.”
“응아아아아!!”
진정하라는 의미로 다시금 이마에 쪽소리를 내고 입을 맞춰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