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얼굴을 한대 때려나 봤으면. 오래 꿇어 앉았다 일어나 저린 종아리를 주무르면서 히나타는 앞서 가는 등짝을 향해 눈을 희게 모로 뜬다. 제법 매섭게 치뜬 눈은 평소의 순둥한 꼴을 죄 잃어, 눈알 아래가 다 뻐근할 정도였다. 아마 지나가던 반 친구가 봤다면 얘 왜 눈을 뒤집어까느냐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으려나. 하지만 하교시간을 넘긴 학교의 복도는 휑했고, 그나마 교무실 앞에 모여있는 몇 안되는 족속들은 죄 히나타와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팥죽색의 튀튀한 져지. 문이 열리자마자 범죄자 연행하듯 히나타의 양 팔을 꿰어 잡았다. 이거 놔! 어깨를 흔들며 항의를 해도 씨알 하나 안먹히는 이유는 여기서 저가 제일 작기 때문이다. 이 쓸데없이 크고 길기만 한 꺽다리들. 어쩌겠나. 둘 다 히나타보다 이십여센티는 더 큰데. 결국 양쪽의 커다란 친구들 틈에 끼어서는, 들리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히나타 너는 다른 선배들한테는 고분고분하면서, 왜 꼭 아츠무 선배랑만 붙여두면 싸움을 하냐?"
너란 애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진짜. 본관을 빠져나와 배구부로 걸어가는 동안 리세키는 연신 이해가 안간다는 투였다. 삼학년은 물론이오, 다른 이학년 선배들하고도 원만히 지내면서 왜 꼭 한사람하고는 그렇게 날을 세우냐는데. 뭔 말을 하겠어. 히나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리세키도 딱히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 눈치였다. 하기사 한학년 내둥 삼일 걸러 싸움박질에, 이주에 한번은 꼬박꼬박 교무실 도장을 찍으니 들을 말이 무에 있나 싶은 거다.
이나리자키 배구부 명물이라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걸 떠올리겠지. 각잡힌 응원이라던가 아니면 쇼맨쉽이 섞인 연습이라거나. 하지만 알 사람은, 적어도 이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다 알지요. 첫째는 쌍둥이 형제의 싸움박질이며 둘째는 주전세터에게 후배가 달려드는 하극상이었다. 어디 듣기로는 선생님들 모르게 과자값을 걸고 저네들끼리 내기도 한다는데. 웃겨 진짜. 매번 이기지 못해서 이제 저에게는 걸리는 판돈도 없다는 말이 히나타는 좀 서러웠다. 두고 봐, 진짜 언젠가는 내가 이긴다. 그러면 배구부 동갑들은 들은 체도 안했고, 같은 반 친구들은 밥이나 먹으라고 입에 반찬을 쑤셔 넣어줬다. 많이 먹어야 언젠가는 이겨보지 않겠냐면서.
그러니까 문제는 미야 아츠무, 저거였다. 히나타가 아니라, 쟤. 쌍둥이 중에 하나이며 히나타와 맨날천날 싸우는 이나리자키 배구부의 주전세터. 요컨대 교내에서 유명한, 배구부 명물의 교집합에 저 인간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문제의 핵심은 아츠무가 아닐까? 히나타는 머릿속에 벤다이어그램을 하나 띄운다. 지난 기말 시험때 밤을 새서 머릿속에 우겨넣은 보람이 있었다. 두번이나 겹쳐있으면 저게 문제지. 너는 후배가 어떻게 선배한테 반항을 하느냐고 혼난게 새삼 서러웠다. 감독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억울했다. 오사무랑 싸울 때도 발단은 늘 아츠무가 막말을 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화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비는 언제나 아츠무가 먼저 걸었는데 혼은 저가 더 난다. 후배라서, 어리다는 이유로.
"…그래서 또 싸운 거야?"
"아니, 그치만 사무, 나는 제대로 뛰었어. 평소랑 똑같이 뛰었는데 좀 삐끗한 건지 덜 닿아서 공 놓친 거라니까? 근데 그걸 가지고 츠무가 막 뭐라 하잖아. 처음엔 참았는데, 아니다 처음도 아냐. 코사쿠 상한테 물어봐. 어쨌든 공 내가 못친건 맞으니까 다시 했는데 자꾸만 츠무가,"
"아주 말하다 죽겠네…. 나 안 도망가니까 이거 마시고 천천히 말해."
턱 밑께로 들이밀어지는 컵에는 밀크 셰이크가 들었다. 볼이 다 패이게 빨대를 물고 나니 다음은 햄버거. 탁자에는 햄버거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봉지들이 나뒹굴었다. 이것도 먹어. 오사무는 히나타의 입에 감자튀김까지 밀어넣고 나서야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어…. 나 어디까지 말했지?"
"계속 공 때렸는데 츠무가 뭐라했다며."
"아, 맞아. 막 더럽게 못뛴다, 너는 장점이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냐, 번호 반납할거냐…. 막 그랬어. 잘 좀 뛰라고 이마도 세대나 때렸다?"
"얼씨구."
"완전 못됐어. 진짜. 왜 맨날 나한테만 말을 더 막하지? 물…론 사무한테도 그러지만, 그거야 가끔이고, 츠무 진짜 나만 하루도 안빼놓고 뭐라해. 그렇게 내가 배구부 온 게 싫은가? 그래도 그게 일년내내 이럴 일이야?"
설움은 판을 깔아줘야 잘도 풀 수 있댔나. 오사무의 앞에서 반이 남은 햄버거를 움켜쥔 히나타의 목소리가 컸다. 아까 교무실에서 목을 움츠리고 고분고분히, 억울한 표정이나 지어보일 때와는 영 틀린 표정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배구를 알려주지 말던가! 그런 히나타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오사무는 두번째 햄버거의 포장을 까며 입을 열었다.
"츠무 성격 더럽고 입 건게 어디 올해만은 아니잖아. 너 온게 싫을 리가. 그냥, 그냥 걔 성격이 뭐같아서 그러지."
"그래도…. 전엔 이정도는 아니었잖아. 내가 공 날려먹어서 잃어버렸을 때도 화 안내더니."
"뭐 그건 그렇지."
실컷 구박당하고 실컷 혼난 뒤의 하굣길. 히나타는 뒤에서 저를 부르는 아츠무도 무시한 채로 냅다 뛰었다. 이리 와보라는 선배님의 하늘 같은 말도 씹고서 버스를 타서는, 패스트푸드점 앞에 내렸다. 저기, 사람들이 오가는 문 앞에는 아까 히나타를 부르던 얼굴과 똑같이 생긴 오사무가 교복을 입고 먼저 와있었다. 빨리 왔네. 그러면 히나타는 입술을 삐죽이면서 나 오늘 많이 먹을 거야. 볼이 퉁퉁부어 동문서답을 했다.
이건 일종의 암묵적인 모임이었다. 미야 아츠무 주둥아리의 피해자 모임. 구성원은 히나타 쇼요와 미야 오사무로, 따지자면 저 재수털리는 입에 된통 욕을 처먹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만 두고두고 고정해서 욕을 먹는 멤버는 일단 이 둘이 유별나서 그렇다. 모이는 날은 부정기적이나 그래도 이주에 한번씩은 만나요. 컨디션 난조 혹은 별 쓰잘데없는 일로 아츠무의 폭언에 시달리던 모임원이 주먹질을 하고 끝내 감독님이나 주장에게 혼나는 날이 모임일이었다.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싸가지가 바가지인 아츠무 욕을 좀 하면서 상대를 위로하고는 집에 간다. 처음에는 어디로 오라는 메일이나 오가야 만났으나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오면 히나타가 혹은 오사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아츠무 그게 사람을 열심히 갈궜다는 말이다. 나쁜놈.
"완전. 완전. 완전! 성격파탄자야. 입만 열면 똥멍청이에, 고물이라고 그러고. 으."
그래서 오늘의 피해자는 저다. 아츠무는 히나타를 매섭게 혼냈다. 공을 못 때린 것도 아니고 미묘하게 손에 잘못 맞았다고, 아웃이 된 것도 아니고 반대쪽에서 리시브가 잘 올라가게 쳤다고. 별것도 아닌 걸로 욕을 주구장창 처먹었더니 아직 햄버거를 하나밖에 안먹었는데도 배가 불렀다. 솔직히 다른 세터였으면 눈치도 못챘거나 별 신경도 안 썼을 일을 가지고 말이다.
평소 히나타는 아츠무의 세터 자질을 높이 산다. 물론, 누군들 안그럴까마는 자신은 훨씬 더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로 아츠무는 대단하고 멋지고 엄청나다고. 키가 유달리 작아 중학교 때는 아예 배구부 입부신청도 못하던 히나타가 전국에서 손꼽힌다는 배구부에서 포인트 머신으로 활약할 수 있는 건 아츠무의 공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었다. 잘 알지. 잘 아는데.
"내가 좀…. 어… 뭐라해야하지? 쪼들린다고 하나? 남들보다 리시브도 못하고 블록도 못하니까 뛰는 거라도 제대로 해야하는 건 아는데…. 듣다가 화가 나더라고. 키타 상도 사무도 저번에, 나보고 조금 한번만 참아보래서 그러려고 했는데. 안됐어."
"어. 뭐…. 나도 실수한 걸 아는데 거기다가 그런 말 하면 순간 열받지."
"경기에서 리세이가 실수하거나 아니면 긴 상이 삑났을 때도 안하던 말을 막 나한테는…. 우리끼리 연습할 때도 하잖아. 그러니까…."
꼭 찝어 저만 신랄하게 욕을 드립다 퍼먹는데는 참을 수가 없었다. 등번호 떼자니, 그게 할 말이야? 거기서 히나타 제 눈에는 불이 들어왔고 저걸 한대 후갈기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려들었다. 결과는 뭐. 코피가 다 무어요. 복부에 주먹질 한번 못해보고 되잡혀서 깔려있었다. 겨우 성공한게 정강이에 발길질 두어번? 멀찍이서 서브연습을 하다 그꼴을 목도했던 리세이 말은 그랬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너 꼭 목욕하기 싫어서 발악하다 주인한테 잡힌 고양이 같았어. 라고. 아니 다시 생각하니까 열받잖아. 앞니 사이로 감자튀김이 하나 두동강난다.
나는 서럽고 슬퍼.
그래서 히나타는 아츠무와 똑닮은 얼굴인 사무를 붙잡고 울상을 지었다. 츠무는 왜 나한테만 더 엄할까. 그러면 오사무는 콜라를 마시다 말고 히나타의 말을 고쳐주었다. 엄한 건 아니고, 지랄 맞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햄버거를 문 채로 웃었다. 숨길 수 없어요. 진실의 광대. 둘은 아츠무 대신 햄버거를 씹었다. 햄버거 세트 세개에 버거 단품 두개. 계산은 언제나처럼 오사무의 지갑이 힘을 냈다.
자신들의 세터에게는 참 다행일 요량으로, 둘은 돌아오는 길에 아츠무 말고 영 다른 이야기들을 했다. 하기 싫어서 돌아버리겠는 숙제 이야기부터 내년 인터하이 현 예선에서 눈여겨 봐야할 다른 학교 애들까지. 주로 히나타가 떠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는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니, 언덕 위에서는 보였던 노을이 내려가니 저 멀리 산에 가려버렸다. 그러니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지름길로 걷는 동안 오사무는 히나타보고 혼자서는 이 골목으로 다니지 말라고 했다. 저번에 지나가다 보니 이상한 애들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사람 때리고 돈뜯고. 히나타는 그 말에 오사무와 똑 닮은 얼굴을 떠올렸다. 츠무는 저에게 돈을 뜯은 적은 없지만, 사무의 푸딩도 모자라 히나타 저의 반찬도 종종 뺏어먹을뿐더러 가끔은 나츠의 간식도 종종 훔쳐먹었다. 완전 깡패 아냐. 늘 아츠무를 볼 때마다 기시감이 든다 했더니. 그 인간, 깡패와 이미지가 비슷했던 거다.
"제발 오늘은 엄마가 사무랑 츠무 갖다주라고 심부름 안시켰으면 좋겠어."
"왜."
"그냥. 얼굴보기 싫으니까. 아직 나는 화가 덜풀렸단 말이야. "
"…그럼 나는?"
올려다본 오사무는 조금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걔 얼굴이 하나가 아니고 두짝인 건 너도 잘 알면서? 저 말은 곧, 너에게 사먹인 나도 보기 싫냐는 뜻이다.
"에이. 사무는 아니야. 츠무가 싫다고. 둘이 다른데 왜 그런 말을 해?"
고개까지 잘잘 저으며 부정했으나, 아마 괜히 말을 꺼냈나보다. 슬쩍 고개를 기울인 오사무의 입에서는 여태껏 히나타가 쌍둥이를 착각했던 일화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아츠무한테 놀림받고는 장난감 삽으로 오사무 머리를 내려치질 않나, 헷갈린다고 매직을 들고와 형제의 새 티셔츠에 이름을 대문짝 만하게 써놓질 않나. 그거 그나마도 한자 다 틀렸잖아. 끝에 피식 웃는 게, 나를 놀렸어. 히나타가 미간과 입술을 모으며 오사무에게 무어라 쏴붙일 참이었다.
"이것들이…. 야, 니들 나만 빼놓고 또 어디 갔다왔는데?"












